1. 부여

(1) 위치:

(2) 흥망:

– 선비족[전연(부여를 쇠퇴시킴) → 후연(고구려와 싸움) → 북연]의 공격을 3세기 때 받음

– 문자왕(고구려 최대 영토)에 복속됨(494)

(3) 정치:

1) 왕을 강력한 군장들이 둘러쌈(5부족 또는 5집단 연합), 지방분권(수해 때 왕 처형해라)

2) 각각의 가들은 사자, 대사자를 거느렸다(따까리)

3) 위나라의 관구검이 쳐들어왔을 때, 고구려를 도운 게 아니라 중국을 도왔다. 

(근데 그 전에 고구려가 먼저 서안평을 공격했다가 발린다)

(4) 경제: 반농반목(마가, 우가, 저가, 구가), 특산물

② 사회구성:

ㄱ. 가(부족장, 군장): 전투 주도, 전투는 의무가 아니라 권리였다. 전투는 무기와 말이 있어야 했고, 이겼을 때 막 약탈하고 할 수 있는 권리였다.

ㄴ. 호민(경제적 부유층): 처음에는 주주 개념이다. 투자하고 전후에 배분받는 거였음. 이들도 전투 규모가 확대되었을 때는 참여했다.

ㄷ. 하호(일반 농민층, 빈곤): 전쟁 시에 물자 운반했음

ㄹ. 노비

(5) 사회/문화:

1) 순장: 보통 죽여서 태워서 묻는다.

㉠ 대개는 부여로 나온다. 그러나 지증왕(6c) 때 순장금지령이 있었다는 것(토용으로 대체)을 보아 신라에도 있었다.

㉡ 고조선의 요동반도 끝 부분의 돌무지무덤인 강상묘, 누상묘(B.C. 7세기)에서 순장 흔적 발견. 비파형 동검도 발견.

㉢ 대가야의 고령 지산동 고분: 석곽묘(돌덧널무덤)에서 순장 흔적

2) 형사취수제:

㉠ 일부다처제를 나타내고, 가부장제를 나타낸다.

㉡ 노동력을 중시한다. 어떻게든 애를 낳게

㉢ 사유재산제. 여자가 다른 집안으로 못 가게 동생이나 형이 취하게 한다.

㉣ 전시국가적 요소. 얼마나 많이 죽었으면 이런 게 생기냐.

㉤ 고구려에도 있다.

3) 1책 12법(69p)

㉠ 고구려에도 있다. (12배 배상만 겹친다고 한다)

㉡ 내용(by 위서동이전)

• 법에 관해서는 1책 12법 이것만 부여, 고구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

• 간음한 자(남자 포함?) 투기(질투)가 심한 부인은 사형: 일부다처제일 가능성이 높다. 

   → 이런 건 부여 것임. 시체 찾아가려면 소와 말을 바쳐.

***부여, 고구려(초기), 옥저, 동예, 삼한에 관한 내용은 우리나라 사료가 없다. 삼국지 위서동이전만을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4) 우제점법:

당시 전쟁이나 큰 일을 앞두고 소로 점 치는 것

(5) 제천행사: 영고

***두 번 제천행사(수릿날5, 계절제10)가 있으면 무조건 삼한이다.

*** 전체적인 제천행사는 모두 추수감사절이다. 특히 10월의 제천행사는 추수감사절이다.

그런데 부여의 영고 12월은 농경이랑 조금 거리가 있다. 이를 수렵사회의 전통이라 본다. 물론 농경사회의 전통도 있다.

반농반목이니까 농경도 있는 거지. 다만 수렵을 많이 반영했다.

*** 동예는 덜 찌질이(제천행사 사이즈가 좀 됐다), 옥저는 더 찌질이(가호가 5,000개 정도였다. AD 50년에 고구려한테 박살난다.)

(7)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편(70p)에서 보면 부여를 굉장히 좋게 묘사해놨다. 

아마도 고구려보다 위나라 관구검을 도왔다는 거에서 보면 위나라랑 친했던 것 같다. 

또한 고구려는 현도군을 잡아먹고 시작했고, 중국과 계속 싸웠으니까 나쁘게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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